생명에 대한 예의

모든 요리에는 죽음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애써 모른척 한다. 식탁에서의 예절은 그런 죽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요리는 그래서 즐겁기 전에 진지한 행위다. 

– 브라질 국민 쉐프 / 알렉스 아탈라

쉐프편 촬영할때 닭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쉐프님이랑 종도씨는 모두 멀리서 촬영중이어서, 남은 나와 생달 스탭중 덩치큰 한 친구랑 이렇게 둘이서 닭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친구 … 가끔 생달에서 시식하는 스텝으로 자주 출연함) 

그 친구는 닭을 잡아 본적이 없대서 내가 잡게 되었다. 양 날개를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 목 아래 가슴 심패에 칼을 꽂고 숨이 끊어지길 기다리는데, 이친구 표정이 가관이다. 눈이 둥그래 져선 어쩔즐을 모른다. 

숨이 끊어지고 뜨거운 물에 담궈 털을 벗기기 좋게 만들라고 줬는데, 이친구 죽은 닭도 잘 못잡지만, 데워진 물에서 나온 털을 뽑는데 헛구역질을 하면서 괴로와 한다. 

” 평소 닭 별로 안좋아 하시나봐요?” 

라고 물었더니 아니란다. 무지 좋아하는데 이렇게 잡는건 첨이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이 닭을 유방영 선생님이 아주 맛나게 훈제를 해서 근사한 닭요리를 만드셨다. 촬영이 끝나고 시식을 하는데 … 그친구 너무 너무 잘 먹는다. 

우리가 포장을 벗기면 맘편히 먹는 고기들에는 … 그 동물들의 살아온 고통과 죽음은 생략되어있다. 그것들은 마치 병풍 처럼 뒤로 가려진채, 우리는 편안하게 그 고기들을 먹고 즐긴다. 그리고 요즘은 참 많이도 과하게들 먹는다. 

우유를 위해. 혹은 고기를 위해.. 태어나자 마자 부모와 생이별을 한채, 좁은 우리에 평생을 갇혀 사육당하는 동물들의 비극적인 삶은, 이런 병풍들때문에 가능 하다. 먹는 자들이 그들의 고통스러운 삶과 비극적 죽음을 안다면 … 과연 이런 잔인한 공장식 경영을 놔뒀을까. 

최소한 그것들을 먹는 사람들은… 내가 먹는 존재들이 어떻게 태어나서 자라고 도축되는지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생명들이 음식이기 전에 존엄을 가지고 살다 죽어가야 하는 생명이란 부분에 대해 고민 해 봐야 한다. 

그리고 내가 먹어야 하는 생명의 죽음을 한번쯤은 내 손으로 겪어 봐야 한다. 그런 경험이 있다면… 최소한 먹거리인 생명들에게 단순히 자본의 논리. 공장과 이익의 논리로 함부로 다뤄서는 안되는 것이란 것 쯤은 깨닳게 되지 않을까. 

우리는 정말 바르게 먹고 있는가. 광우병. 그리고 그 수많은 가축병은 단순히 재수없어 겪는 일들일까.

사족) 어느분 글에 …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가면 자기가 키웠던 반려동물이 마중을 나온다 라는 글을 봤다. 

그 글을 읽고 자기가 먹고 죽였던 생명들이 다 마중을 나오면 어떨까 생각 해보니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조심 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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